홍학의 자리 - 정해연 장편 소설
틈 날 때마다 지하철에 서서, 기차에 앉아서 읽던 소설.
한 번 읽기 시작하면 손에서 놓기 힘든 몰입감을 준다.
다만 주인공이 나와 정말 정반대의 도덕관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의 얕은 윤리의식이 드러나면 잠시 책을 덮었다 ㅎ.ㅎ..ㅎ 몰입해서 보느라 내가 너무 화나기 때문에 참을 수 없었다!! ㅎㅎ .ㅎ.
소설이라는 폼을 가장 잘 활용한 작품이 아닌가 싶다.
정방향으로 시간의 흐름대로 읽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독자들은 작가의 휘둘림에 그대로 휘둘려버린다.
스릴러와 미스터리물을 좋아해서 어지간한 유명한 작품들은 반전을 다 예상할 수 있었는데 이건 정말 끝의 끝까지 작가의 농간에 차곡차곡 놀아났다.
소설 전체를 관통하는 기묘한 빈틈이 있는데, 모든 장을 읽고 나면 이 빈틈은 하나로 뭉쳐져 완벽하게 끝맺음이 된다.
깔끔한 마무리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할 깔끔한 문장 구성이 소설을 읽는 내내, 그리고 작가의 말을 읽을 때까지도 만족감을 안겨줬다. 작가의 말을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. 앞서 말한 기묘함과 동시에 작가가 의도한 모든 것들이 한 번에 다 같이 자연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에 마무리로 작가가 짠~ 사실은 이러이러했습니다! 하고 설명해 주는 게 좋았다.
소설을 읽는다는 행위는 모두 독자의 상상에 맡기기 때문에 어디로 튈지 모르는 흐름을 잡아주는 게 작가의 역할인데 멱살 잡고 끌고 가신다. 신선한 충격이었다. 모든 건 의미가 있었고 이유가 있었다. 아 이거 스포가 안되게 후기를 쓰려고 하니 참 답답하게 말이 중구난방 흩어지는데, 아무튼 지나가다 이 글을 읽은 사람이라면 꼭 한번 '홍학의 자리'를 읽어보기 바란다. 난 참 제목이 슬프게 와닿았다.
예전에.. 한.. 14년 정도 전에
'살육에 이르는 병'이라는 일본 스릴러 소설을 읽은 적 있는데, 이때는 번역 때문인지 아니면 작가의 한계인지 초중반부터 반전과 엔딩을 모두 예측해 버려서 읽는 내내 잔인한 묘사에 그냥 기분만 나빴고 반전 소설이라는 장르 아닌 장르에 편견을 가지게 된 계기였다. 하지만 '홍학의 자리'를 읽고 난 뒤 이 짜릿함은 다시 반전 소설을 찾아 읽고 싶은 욕구를 불라 일으켰다. 휴 뭔가 굉장히 개운하다.